[기고] 경찰, 디테일에 더 힘쓰자 … 서울 중부경찰서 김현희 경감

입력 2015-07-28 09:24  

지난 3월 어느 날 오후 9시께 112로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여성 동료가 회사 회식 중 만취상태에서 사라졌는데 전화도 받지 않아요” 라는 내용이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사라진 20대 여성은 식당에 신발도 벗어둔 채 종적을 감췄다.

범죄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중부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즉시 현장으로 출동해 회식장소 및 휴대폰 기지국 주변을 집중 수색했다. 지구대 파출소의 순찰차 4대와 실종사건 전담 여성청소년수사팀 전원이 긴급 출동, 실종자를 찾아나섰다.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112타격대도 출동준비 명령을 내렸다.

그러던 중 식당 맞은편 자기 회사 건물 3층에 있는 실종자를 발견했다. 실종자는 술이 좀 과해 자릴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식당 슬리퍼를 끌고 무심코 나와 회사 복도에 누워 자고 있었다. 실종자를 무사히 찾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얼마 전 발생한 수원 여대생 실종 사망 소식을 접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수원역 앞 ‘로데오거리’는 유동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2시간 30여 분간 젊은 남녀 대학생이 만취하여 쓰러져 있었는데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우리에게 만약이란 없지만 그래도 만약 이 취객들을 누군가가 112 또는 119로 신고해줬다면, 경찰이나 소방이 주취자 보호활동 일환으로 이들을 안전하게 귀가시켰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약’은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을 통해 유사한 범죄의 발생을 막을 수 있다.

중부서는 여성청소년수사팀이 만들어진 올 2월 이후 5개월간 419건의 실종사건을 접수 처리했다. 대부분 사건이 실종자가 만취하여 집을 못 찾아오거나 외박을 하면서 집에 연락하지 않아 실종신고로 접수되는 경우지만 어느 사건 하나도 가벼이 여긴 적이 없다. 모든 사건은 ‘디테일(detai)l’ 즉 작고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며칠 전 새벽 “주취자가 길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또 접수되었다. 파출소에서 신속하게 출동해보니 70대 중반의 어르신 한 분이 쓰러져 있었다.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하는데 다짜고짜 뺨을 올려 부쳤다. 괜히 뺨을 얻어맞은 젊은 경찰관의 마음이 얼마나 씁쓸했을까?

경찰서 112종합상황실엔 ‘天下大事 必作於細’라는 말이 붙어 있다. ‘세상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것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주민의 작은 신고 하나하나도 소홀함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우리 중부경찰 스스로의 다짐이다. 경찰의 이런 다짐을 시험하려는 뺨때리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세 사건을 접하며 시민들께 바란다. 작은 일이라도 경찰에게 신고를 해주시라고, 그러면 경찰은 그것을 결코 작은 일로 여겨 소홀히 하지 않고 정교(精巧)하고 치밀(緻密)하게 살필 것이다. 한마디로 ‘경찰은 정치(精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출동하는 경찰관을 조금은 더 예쁘게 봐주십사 하고 부탁드린다.

◆ 김현희 경감 이력

서울중부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계장 김현희 경감은 2009년 경찰대학(제25기)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언론홍보학(석사)을 공부했다. 2015년 경감으로 승진해 중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실종자를 찾아 가족 품에 돌려주는 일과 여성 및 청소년 범죄를 수사하고 있다.

한경닷컴 뉴스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